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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나이가 50이 되고 보니, 내 나이의 무게에 짖눌리는 느낌이 든다.
나이만 이만큼 먹었지, 나는 30~40대와 다를 바가 전혀 없다고 생각이 되니까 말이다.
요즘은 결혼, 출산 등이 늦어지다 보니 지금의 나이에 0.7을 곱해야 진짜 내 나이가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나도 진심 그렇게 생각이 된다.
그러나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에서 당황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우리 동네에 단골로 가는 카페가 있는데, 카페 사장이 나를 볼때마다 "어머님은 점점 젊어지세요." 라든지....
"핑크색 티가 정말 잘 어울리세요. 어머니들 잘 안 입으시잖아요." 하는 접대용 멘트를 한다.
심지어 "어머님들에게 어떻게 얘기를 해야할지 모르겠어요....젊어졌다고 해야할지...예쁘다고 해야할지...
어느게 좋으세요?..."이런다.
"난 아직 그런 말 듣기 싫다고!!" 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내 생각은 내 생각일뿐. 타인들이 보는 나는 그저 '중년여성'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아이러니한 건, 나는 아직 젊다 하면서도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자 할때는 어느새 늙은이가 된다는 것이다.
"이 나이에..." "지금 시작해서 어느 세월에..." 등등의 말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확실히 과거의 50대와 지금의 50대는 정말 다르다.
지금의 50대는 40대정도로 밖에 생각이 안되는 건 사실이다.
정신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오늘 내가 포스팅 하려는 이 할머니는 나의 이중성을 깨닫게 해주기 충분한 분이다.
미국의 국민화가라는 모지스 할머니(1860~1961)를 소개한다.
그녀는 '이제 나는 거의 다 살았다.'라고 해도 될 나이인 75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이란 건 15세에 시작해도 늦은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겠지만, 모지스할머니는 분명 75세에 그림을 시작한
것이다.
평생 자녀들을 키우느라 자신의 재능은 커녕 자신을 돌보는 것도 뒷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40도, 50도 아닌, 70이 넘어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녀가 살고 있는 마을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그리고, 마을의 남녀노소가 모이는 큰 행사, 작은 행사들.....
그렇게 102세까지 사는 동안 소박하고 따뜻한 그림을 그린 그녀에게 미국의 '국민 화가'라는 별칭도 주어졌다.
모지스할머니에게는 10명의 자녀가 있었지만, 그 중 5명을 앞서 보냈다고 한다.
72세에는 남편을 보내고 취미였던 자수 놓는 것도 관절염이 심해져서 더이상 할 수 없게 되자, 그 공허한 시간들을
그림으로 채워 나간 것이다.
할일을 다 마친 인생의 끝자락에서 아무 사심없이 평안한 눈으로 세상을 그린 그림이라 그럴까?
거장의 명화를 보는 느낌과는 전혀 다른 소박하고 따뜻한...그리고 어떤 특별함을 느끼게 한다.
따뜻하고 소소한 행복의 일상이 담긴 할머니의 그림은 어느 유명 화가의 그림보다 더욱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는
힘이 있었던 것이다.
모지스 할머니는 이런 말을 남겼다.
"사람들은 늘 내게 늦었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사실 지금이야말로 가장 고마워해야 할 시간이에요.
진정으로 무언가를 추구하는 사람에겐 바로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때입니다."
그녀의 인생을 좀 살펴보자.
가난한 농장의 10남매 중 셋째인 어린 모지스는 호기심이 많았고, 매사에 긍정적이었으며 따뜻한 심성이라 농부인
아버지를 도와 농사일을 하는 것을 즐거워했다고 한다.
세상을 떠날때까지 농장에서의 일들을 추억했다고 한다.
"시간이 나면 창밖의 풍경을 관찰합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릴 때면 눈을 감고 추억들을 떠올리죠."
이 말에 왜 나는 지금 유년기를 보내는 아이들이 떠오르는 걸까? 나도 그렇지만 아스팔트에서 자란 -자연을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아이들은 눈을 감으면 무엇을 추억하게 될까?
1870년대 미국의 뉴잉글랜드 지역의 자녀가 많은 집 딸들의 평범한 직업은 가정부였다.
어린 모지스도 마찬가지였고 다행히 가정부로 일하던 곳에서, 그녀를 가족처럼 대해줬고 학교까지 마칠 수 있도록
지원해주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녀가 받은 이웃들의 온정은 나중에 그림속에도 녹아 있게 된다.
결혼 생활은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행복했다.
열 명의 아이들 중 다섯 명을 먼저 떠나 보냈고 72세 추운 겨울날 남편도 하늘나라로 떠난다.
그후 결핵에 걸린 딸을 간호하면서 손자들과 살던 모지스할머니는 손자 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물감을 가지고 그림
그리기를 시작한다.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에도 예술이 탄생되지만 가장 참혹하고 슬픈 순간에도 예술은 탄생한다고 했던가...
남동생과 여동생마저 먼저 떠나 보낸 그 마음이 그림을 통해서 나타나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그림을 엽서로 만들어 주변에 나눠주기도 하고 마을 곳곳에 붙여 놓기도 했다.
어느날 마을의 작은 약국 벽에 걸린 모지스할머니의 그림에 감동을 받은 미술 수집가 루이스 칼더에 의해 그녀의
그림이 세상 밖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80이 되어서 <어느 농부의 아내가 그린 그림들>이라는 이름으로 첫 전시회를 열게 된다.
그녀의 소박한 터치로 그려진 사람들, 시골 마을의 순수함이 가득한 그림들에 많은 도시인들은 매료되었다.
그녀는 점점 유명해졌지만 늘 그걸 어색해했다.
1948년 뉴욕타임스는 모지스할머니의 88년 인생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실었고, 1950년 최초로 전국에서 90세
생일을 축하했다.
1952년 92세 때 <내 삶의 역사>라는 자서전도 출간을 했으며, 다음해에는 <타임지> 표지 모델이 되기도 했다.
모지스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인 101세까지 무려 1600여점을 그렸고, 그 중에서 250점은 100세 이후에 그린
그림이었다.
역시 좋아하는 일을 하면 나이에 상관없이 에너지가 발휘되는 것인가 보다.
모지스할머니는 마지막까지 공동체 안에서 사랑받고 인정 받으며, 그림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행복하게 살았다.
그녀는 말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세요? 그럼 그냥 하시면 돼요.
삶은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것이에요. 언제나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나이가 먹어가는 것을 인정하기 싫으면서도 정작 하고 싶은 일 앞에서는 나이를 들먹이며 작아지는 나에게,
모지스할머니는 외할머니같은 따뜻함으로 얘기해주시는 것 같다.
"이제라도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나의 경우에 일흔 살이 넘어 선택한 새로운 삶이
그 후 30년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줬습니다."
따뜻했고, 풍요로웠을 모지스할머니의 삶이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모지스할머니를 알게 되어 앞으로 내 인생을 더욱 여유롭게 생각해 보게 된 듯하다.
그리고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이 풍요로운 삶을 사는 중요한 덕목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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