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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여인들을 당당한 주체로 변화시킨다.

    에블린은 항상 자신을 무시하는 가부장적인 남편의 눈치를 보며, 양로원에 누워 있는 숙모를 뒷바라지하며 무기력한 생활을 하고 있다.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된 그녀는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남편의 마음을 붙잡아 두기 위해 '여성 강좌'를 듣기도 하고, 음식을 주체 못 해 뚱뚱해진 자신을 보며 점점 자신감을 잃어 가며 살고 있다. 어느 날 양로원에서 만난 80세의 노파 니니가 들려주는 앨라배마주의 '휫슬 스탑'카페의 이야기에 빠져 들게 된다.   그 이야기의 시작은 50년 전 미국의 남부로 돌아간다.   잇지는 드레스보다는 바지를 더 좋아하는 말괄량이 소녀이다.   잇지가 가장 사랑하는 오빠가 기차 사고로 죽자, 큰 충격을 받고 바깥으로만 돌아다닌다.  자라면서 낚시, 포커 게임, 술, 꿀 채취 등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기는 활동적인 것들을 즐기게 된다.    시간이 흘러 잇지를 변화시키기 위해 잇지의 어머니의 부탁으로 루스를 집으로 초대한다.   그러나 루스가 변해가면서 서로에게 매료된다.   둘은 한 밤중에 기차를 타고서 기차 안의 식량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기도 하고, 포커를 치거나 벌꿀을 채취하려 가기도 한다.  이렇게 둘도 없는 친구사이가 된 어느 날 루스가 프랭크와 결혼을 하며 잇지를 떠나게 된다.   몇 년의 시간이 흘러 잇지는 어머니의 부탁으로 루스의 집을 방문하게 된다.  루스가 남편 프랭크로부터 폭행을 당하며 산다는 것을 잇지가 알게 된다.  게다가 루스의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루스는 임신까지 한 상태이다.    잇지는 지체하지 않고 루스를 그 집에서 탈출시킨다.  그러자 프랭크는 집을 빠져나가는 루스를 계단에서 발로 차서 넘어 뜨리기까지 한다.    집을 빠져나온 루스는 차를 타고 가면서 손에 낀 반지를 빼서 밖으로 던져 버린다.                  이야기는 다시 에블린에게로 돌아온다.  그녀는 마트에서 부딪치며 시비를 거는 청년을 끝까지 쫓아가서 따지는 자신을 보게 된다.  물론 장을 본 마트 봉투가 찢기고 눈물이 터질 직전이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에블린을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당당히 해내었다.      다시 니니를 만난 에블린 자신의 신세한탄을 늘어놓는다.   먹을 것을 자제하지 못하는, 늙지도 젊지도 않은 자신에 대하여.   니니는 갱년기에 도움이 되는 호르몬제를 먹고, 직장을 다녀보라고 조언한다.    에블린은 니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변화되기 시작했다.   잇지 와 함께 프랭크로부터 탈출한 루스는 건강한 아들을 낳는다.   잇지 와 루스는 기차 옆에 "휘슬 스탑"이란 카페를 차리게 된다.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가 이 카페의 주요 메뉴이다.   이곳에서는 흑인도, 가난한 사람도 함께 식사를 나누며 그들의 소중한 추억을 나눈다. 마을 사람들은 그곳에서 정을 나누며 하나라는 공동체 의식이 자연스럽게 생기게 되었다.   그 중심에는 잇지와 루스가 있었다.  씩씩한 잇지는 여자이지만 그들의 보호자이다.  그리고 친절하고 싹싹한 루스는 어머니처럼 그들을 포근히 대해 준다.  넓고 깊은 그녀들의 마음 씀씀이로 마을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흑인과도 친한 그녀들을 못마땅해하고, 급기야는 KKK단의 습격을 받기도 한다.   이 영화는 당시의 가장 연약한 사람들인, 여성, 흑인,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모두 보여 주고 있다.    "흑인들에게 음식을 파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보안관에게 잇지는 이렇게 답한다.   "피부색을 따지기 전에 그 피부 속의 인가이 깨끗한가 더려운지 알아야 한다."  멋지게 응수하는 잇지이다.   KKK단이 잇지의 하인이었던 흑인 빅 조지를 괴롭힐 때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다 함께 대항한다.   여성들, 흑인들, 가난한 사람들... 가장 힘없는 사람들이 서로 연대한다는 것이 그들 자신들에게도 참 소중하고 든든하다.  서로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기에 이들에겐 이 카페가 위로의 공간이지 어느덧 삶의 활력소가 된 것이다.    교회 부흥회가 한창이던 어느 날 루스의 남편인 프랭크가 몰래 찾아와 루스의 아기를 훔쳐 가려고 한다.   그를 막으려는 사람들과 실랑이를 하던 중 누군가 나타나 프랭프를 후려쳐서 죽게 된다.   빅 조지는 잇지에게 알리고 모두 모이게 된다.     결국 돼지 삶는 날. 프랭크를 대신하여 흔적을 깨끗이 없애 버린다.   실종된 프랭크를 조사하던 보안관은 잇지와 빅 조지를 프랭크 살인범으로 지목하게 된다.   흑인 조지가 혼자 감당하기 위험할 것을 알고 잇지도 용감하게 법정에 선다.     법정에서 루스는 "점잖은 기독교도 부인이 왜 저런 여자를 따라갔나요?"라는 몰상식적인 질문을 받게 된다.   한없이 약하기만 했던 루스도 이젠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당당히 대답한다.   "그녀는 저의 최고의 친구이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라고     잇지에게 불리하게 상황이 돌아가자 목사님의 증언으로 사건은 종결이 된다.  이 역시 마을 사람들의 강한 연대의 힘을 보여 준 결과가 아닐까?   그 후 루스는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기차역이 없어지면서 "휘슬 스탑"카페도 문을 닫게 되었다.      이야기를 다 듣고 에블린은 잇지, 루스 두 여인에게 완전히 매료된다.  그리하여 본인도 당당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무의미한 여성 강의는 때려치우고 운동을 시작한다.   공허한 마음을 단 음식으로 채웠던 것도 야채로 바꾸기도 한다.      인생의 스승이 된 니니와 함께 하기 위한 집은 고쳐 니니의 공간을 만들게 된다.  남편은 언제나처럼 절대 안 된다고 하자, 내 앞에서 "절대"라고 하지 말라고 당당히 요청한다.   에블린은 이렇게 스스로 변화되고 있었다.

    나의 삶의 주인은 바로 나여야 한다.

    루스가 남편 프랭크에게서 탈출하면서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서 버린다.    에블린은 니니의 이야기에 힘을 얻어 마트에서 무례한 청년에게 당당히 주장한다.   이것이 루스와 에블린이 나의 삶의 주인은 내 자신이라며 외치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자에 대한 정해진 틀이 존재한다.  그 틀이 문화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남자의 소유물이다는 것은 공통적인 틀이다.  에블린과 루스는 그 정해진 틀 속에서 살아왔다.  때론 그 틀에 싫증이 나지만 벗어나기보다는 더 틀 속으로 들어가려 애쓰며 살아온 듯하다.  그러다 잇지라는 인물을 만나면서 틀을 깨야 한다는 눈을 뜨게 된다. 흑인들, 여자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연대를 이루고 서로를 위로하며 연대를 이룬다는 것이 참 인상적이다.   힘없고 억압 속에서 살아온 그들이 서로의 작은 등에 기대며 작은 힘으로 뭉쳐 서로를 지켜준다.  그래서 정당방위였지만 살인이라는 죄 앞에서도 뭉쳐서 헤쳐나간다.   영화적인 이야기지만 여자들은 통쾌하다.   여자들을 자기 소유물처럼 마음대로 하려는 그들에게 '우리는 너희들의 소유물이 아니다'라고 당당해  외칠 수 있어야 정해진 틀 속에서 한 발씩 나아가 수 있을 것이다.   지금쯤 에블린은 과거의 자신처럼 무기력한 누군가에게 잇지와 루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해주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래서 그녀도 반지를 빼버리고 무례한 청년에게 당당히 나를 주장하라고 독려하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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